지난 주일 설교영상은 설교문으로 대체합니다.
자기의 의를 경계하라!
시편 103편 2-5절
우리는 지난 몇주간 ‘말씀중심’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며, 많은 미혹과 유혹이 우리의 믿음을 갉아먹는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를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들을 가슴에 새기고 삶의 순간마다 말씀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날들을 보내셨습니까?
나이를 불문하고 주어진 한 구절의 말씀 앞에 나 자신을 굽혀서 복종시키려는 누군가를 만날 때에 가장 기쁘고, 존경스럽고, 무엇보다 그에게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도저히 굽혀지지 않는 ‘자아’를 굽히고 굽히고 또 굽혀서 끝내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들이 많아지기를, 이런 일들이 교회안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말씀중심!’ 으로 살아갈 때에, 빠지기 쉬운 늪이 하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 늪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좀 더 거룩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속에 살아갔습니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이 땅에 친히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향해 ‘감히 하나님을 모독하지 말라’ 는 죄명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함 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을 공격했습니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입니다.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영혼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 교회를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공동체를 깨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죄가 바로 ‘자기 의에 빠지는 죄, 자아도취의 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정통함으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걸 가지고,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이 한 때 병든 자를 구하니까 감히 안식일에 불경건하게 이런 일을 행했다며 예수님을 향해서도 정죄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정통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양을 건져내는 일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며 지켜 행했지만, 그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규율’ 일 뿐, 하나님이 중요시 하시는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얻지 못했습니다. 순전하고 깨끗한 마음이 아닌 자아도취, 자기 만족을 위해 율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이런 모습이 가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 이하에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자기를 의롭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한다는 것은 ‘죄’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기도하는 두 사람을 예로 드십니다.한사람은 바리새인, 한사람은 세리입니다.
당시에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던 바리새인은 하나님앞에 기도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나로 저 사람들과 같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 사람들은 불의하고 토색하고 간음한 자들이고 나는 십일조도 하고 금식도 하고,,,
이것은 올바른 기도라 말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당시에 사람취급 받지 못하던 세리들, 돈에 눈이 먼 자들이라 손가락질 받던 세리들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리처럼 낮아진 이 자가 진짜 의롭다 칭함을 받을 만한 자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날마다 삶 속에서 세리처럼 내 가슴을 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가슴을 치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있습니까? 누군가를 나보다 못하게 여기거나, 저 사람은 틀렸다라고 함부로 판단하며 말로, 손가락질로, 눈으로, 표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누군가를 멸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전도서 7장 16절 말씀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의인, 지혜자 말고 지나친 의인과 지나친 지혜자에게는 상대방은 전적인 죄인이요. 완전한 어리석은 자로 전락할 뿐입니다. 지나친 의인과 지나친 지혜자가있는 곳에는 오직 정죄, 판단, 심판이 난무합니다. 판단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만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판단의 보좌에서 내려와 겸손히 낮아지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지켜나가며 애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노력해야 하고, 작년보다 올해 좀 더 성장했어야 하고,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며, 그래 수고했다! 계속 전진하자! 를 넘어서는, 자기만족과 자아도취에 빠질 때, 쌓아진 것들을 통해 내 목에 힘이 들어가고 교만이 들어가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멈춰서서 다시 마음을 비워내야 할 때입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 했던 바울사도는, 바리새인들이 빠졌던 늪에 빠지지 않았습니다.늪에 빠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신약의 기둥이 되는 , 엄청난 믿음의 선조가 되었습니다.모두가 넘어질 때 어찌하여 그는 꿋꿋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바울사도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뒤에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목적지만 바라보고 달려갑니다. 아직 잡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직 이룬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삶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겁니다. 스스로를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바울사도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늘 심령이 가난해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한 겨를이 없습니다. ‘연약한 나’에게 부어주신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 이러한 이들의 안에는 오직 이것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자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할 뿐입니다. ‘Amazing grace!’나보다 더 연약해 보이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게 되는 겁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이세상의 모든 인생사가 ‘헛될 뿐’임을 고백합니다.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와도 같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헛된 바람을 잡으려고 달음박질하는 헛수고를 하지 말고, 그러면서 손에 뭐 좀 쥐어졌다고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교만해지지 말고,,,
오로지, 주님이 주신 푯대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 3장 1절 말씀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말세가 되면 나타나는 사람들의 죄인데, 그 첫 증상이 ‘자기를 사랑하며’입니다.이 자기를 사랑하는 일이, 더 정확히 말해서 자기를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하는 일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을 명심하십시오.
카톨릭 교회가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을 당시 종교개혁에 앞장선 유명한 설교자로 존경받던 ‘사보나놀라’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성당 뜰 안에 있는 마리아 상 앞에 참배하고 기도하는 중년부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음날 역시 그 시간에 산책을 하다가 또 그 부인이 마리아 상 앞에서 참배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부인이 아침 일찍이 나와 마리아 상 앞에 참배하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와서 경배하고 기도를 합니다. ‘사보나롤라’는 그 깊은 신앙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에 자기 친구와 그곳을 지나다 그 부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보나롤라는 친구에게 그 여인의 깊은 신앙심에 대해 칭찬을 했습니다.
‘내가 저 부인을 보니 비가 오나 바람이부나 눈이오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끊임없이 저렇게 기도하더군 참으로 신앙 깊은 여인이야’ 이 말을 들은 친구 사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자네 그 이야기를 모르는 있는 모양이군, 사보나롤라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를 모른단 말이야?
친구에게 사제는 그 사연을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옛날에 저 마리아 상을 조각할 때 어떤 예술가에게 의뢰했는데 그 예술가가 마리아 상 모델을 찾다가 당시 처녀이던 저 여인을 모델로 하여 마리아 상을 만들었다네, 그 후 저 여인은 매일 자신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마리아 상 앞으로 출근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 앞에 참배하고 기도하고 있다네 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종교라고 하는 이름으로 자기를 숭배하는 자기 우상에 빠진 것입니다. 자기숭배의 병은 모든 사람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아숭배 말고 하나님만 예배합시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 우리의 삶을,
오직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을 위해 소진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심령의 고백이 되어, 우리 한빛의 지체들 모두가 자기 의의 늪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서 기쁘게 헤엄치기를 축원합니다.